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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여행

지난 토요일 학생들과 대학로 디마떼오에서 창체를 했다. 내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26명의 학생들은 대학로 디마떼오의 소규모 1인극 공연장에서 대표 이원승씨로부터 이탈리아의 문화와 전통피자에 대한 유익한 강연을 들으며 맛있는 화덕피자 세트요리를 먹었다. 개그맨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기업가로 변신한 이원승씨의 삶에 대한 철학과 학구적인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기념사진 한 장을 찍을 때도 마치 토끼를 노리는 맹수의 표정을 지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가 왜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생생한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강연을 경청하고 강연 말미에 십여 개의 질문을 하면서 뜨겁게 호응하였다."

모처럼 토요일에 서울에 간 김에 가족도 함께 갔다. 배낭을 메고 기차로 청량리엔 간 다음에 지하철로 갈아타서 혜화역에 도착했다. 창체 하는 곳에 가기 전에 학림다방에서 카푸치노와 딸기쉐이크,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드라마 별그대에 등장한 곳인데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고 베토벤의 음악이 LP판으로 나온다.

디마떼오에서 피자를 먹고, 바로 앞의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에서 책을 구경하였다. 20킬로그램까지는 4천원에 택배로 보내주는 서비스 덕분에 부담 없이 책을 바구니에 마구 담았다. 총 31권의 책과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LP판 두 장을 10만원에 살 수 있었다.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종종 들러야 할 곳이다. 최근 들어 온라인에서 중고 책을 사기도 하는데 직접 보면서 중고 책을 살 수 있고 LP판도 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호텔 라마다종로를 찾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내비게이션을 보다가 보도블록에서 발이 꼬이면서 넘어지며 코등이 파이고 무릎이 까졌다. 단지 걷다가 길에서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제법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확인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다행히 프론트에서 마데카솔과 밴드를 얻어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

광장시장으로 가는 길에 중고 카메라점에 들러 대형 필름카메라도 구경하고, 광장약국에서 듀오덤이라는 것도 샀다. 그 약국은 일요일에 쉰다고 하는데 다칠 때도 요일을 잘보고 다쳐야 할 것 같다. 아내는 시장에서 내 추리닝 바지를 샀고, 순대, 어묵, 김밥, 떡볶이, 빈대떡, 순대국밥 등을 먹었다. 대형 순대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와~ 크다며 한마디씩 했다. 맛은 보통 순대랑 똑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처음 본다. 서서 먹다가 자리가 나서 간신히 끼어 앉다가도 눈치를 보며 일찍 일어나야 한다. 육회골목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청계천을 따라 두산타워와 밀리오레까지 걸어가며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광장시장에서 육회를 사서 호텔에서 먹었다. 육회는 한 팩에 만2천 원 하는데 횡성에서 먹는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가족이 서울에서 1박 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라마다종로는 종로에 있어 웬만한 곳은 걸어갈 수 있고 오픈특가로 가격이 괜찮았다. 시훈이는 영화를 볼 생각으로 노트북도 가져갔지만 너무 피곤해서 11시쯤에 침대에 누웠다. 멀리 남산타워의 멋진 야경이 보였다. 작년 마지막 날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었다.

다음날은 스타벅스에서 브런치 스타일로 아침을 먹고, 종묘 구경을 갔다. 해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조선시대의 제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5월 첫 째 주 일요일에는 제례악까지 연주된다고 하니 그 때 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북촌 가는 길에 떡카페 질시루에서 떡과 차를 마시고, 떡박물관도 구경했다. 질시루에서 차를 마시면 7천원 당 떡박물관 입장권 한 장을 준다. 디마떼오는 피자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질시루는 떡이란 음식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음식 한 가지만 잘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란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게스트하우스도 두 곳을 구경했는데 5월에 다시 서울 나들이를 한다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는 것도 생각중이다. 북촌에서 많이 걷지는 못했지만 그 지역의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날이 더 따뜻할 때 다시 한 번 걸으면 좋겠다. 아내는 이곳에서도 시원이 꽃바지를 하나 샀는데, 어딜 가도 옷에 관심이 많다. 반면에 시훈이는 도로 위의 차를 보며 연신 감탄한다.

인사동으로 가서 아내는 내 한복을 사고, 쌈지길을 구경하고,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박수근 작품전을 관람했다. 이럴 때는 3만8천원도 망설임 없이 결제하는 아내다. 박수근은 1965년 51세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큰 대접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남아 있다. 전시된 작품은 말년에 그린 것이 거의 대부분인데, 어쩌면 그도 그의 작품이 그의 삶과 맞바꿔질 운명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한 눈이 보이지 않고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

서울에 올 때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보따리를 들고 다시 청량리로 갔다. 롯데백화점에 들어서니 다음날 백화점 쉬는 날이라고 공격적으로 먹거리 세일을 한다. 반찬 세 팩에 만원, 등심은 두 팩에 만원, 초밥은 세 팩에 만원, 만두 세 팩에 만원, 빵은 네 봉지에 만원 하는 식이다. 아내와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정신없이 주워 담았다. 보따리는 처음의 세 배가 되었다. 만두는 식당가에서 먹고, 초밥과 빵은 기차 안에서 먹으며 1박2일의 짧고도 긴 서울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 모든 여행에는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다. 1박2일은 더욱 특별하다. 나는 집을 사랑하지만 그래서 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박형종   2014-03-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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