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aso.net > 할머니는 일학년 시원이는 며칠 전부터 영화를 보자고 졸랐다. 광고에서 보았는지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수첩에 적어 놓고 그것을 보자고 했다. 나도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평일에 보는 것은 왠지 마땅치 않았다. 아무래도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인데, 영화에 빠져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원이가 오늘 영화를 보기로 했다고 짐짓 잊은척하는 내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럴까?"" "그럴까?가 아니고 그러기로 했어!"
SK브로드밴드에서 검색해보니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있기는 했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애니메이션이란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할머니는 일학년"이었다. 평점도 좋았다. 노트북으로 좀 더 알아보니 올해 5월에 개봉한 영화였다. 왜 들어본 적이 없지?
안방이나 거실, 서재에서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각각 알맞은 크기의 스크린을 달았다. 프로젝터로 보면 극장 같은 기분이 나기는 하지만 이동식 프로젝터를 설치하는 것 이외에도 안방에서 볼 때는 셋탑박스를 옮겨야 하고, 거실에서 볼 때는 스크린 앞의 테이블을 치우고 좌식의자를 서재에서 가져와야 한다. 오늘은 간단히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봤다. 어차피 이번 영화는 화려한 영상이 아니라 잔잔한 이야기를 듣는 영화였다. 시원이는 영화 보면서 먹기 위해 마침 인천의 어머님이 보내주신 반건조 오징어를 준비했다.
영화를 보고 시원이는 일기를 썼고, 시훈이는 기타를 쳤다.
나는 카푸치노를 한 잔 만들어 마셨다. 한동안 내가 뽑은 카푸치노가 맛이 없었는데 지난 열흘 정도 연구해서 까페와 비슷한 맛을 내는 조건을 찾았다. 커피를 잘 볶아야하고, 충분한 양을 넣고 추출해야 하며,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잘 맞아야 한다. 그리고 그라인더도 자주 청소해야 한다.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는 11월을 붙잡고 싶지도 않지만 오는 12월이 달갑지도 않다. 그래도 영화라도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이 있어 갈만은 한 것 같다. 다시 커피 한 잔이 당기는 밤이다. |